디지털 혁명, 그 중심에는 컴퓨터와 이를 광범위하게 이어주는 네트워크인 인터넷이 자리 잡고 있었다. 컴퓨터 사이의 연결에서 시작된 인터넷은 이를 기반으로 텍스트와 이미지를 열람하고 전송하는 월드 와이드 웹이 보편화되면서, 우리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세계에 거주하게 되었다.
사실상 국경이 없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새롭게 공동체를 형성하고, 각자의 문화를 만들어내며,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 비록 그것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 생성하고 나눈다. 웹 상에서의 경험은 물리적 세계에서의 경험만큼이나 우리의 인식, 생각, 그리고 행동까지도 깊은 영향을 미치며 ‘나’에 대한 이해와 세계에 대한 이해 모두를 변화시켰다.
이제 사이버 ‘공간’이 아닌 시간과 의미를 내포하는 ‘장소’로서 존재하게 된 웹은 사회, 문화, 그리고 정치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면서 더욱 방대하게 확장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을 지나 이제 제 4차 산업 혁명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온라인 세계로의 대규모 이주 이후의 지금, 인터넷과 웹은 더 이상 새롭고 신선한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 독특한 존재론은 사람들에게 삶과 세계, 그리고 데이터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남기면서 중요한 예술적 영감으로 자리하고 있다.
옵/신 페스티벌(OB/SCENE Festival)의 프로그램이었던 김지선 작가의 [역행의 여행사 II: 불빛과 저 마을을 향해]와 [우리의 사원]은 이러한 웹을 소재로 삼아 디지털 시대에 인간의 관계와 문화, 그리고 가치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짚어본다. 김지선 작가는 사회 시스템의 경계와 균열, 나와 세계를 감각하는 것, 사회 시스템과 문화 및 “No man’s land(법, 규범, 국경에 의해 생겨난 물리적 영토 내에서의 다층적 공간, 실재적 장소이나 시스템에 의해 배제된 공간, 온라인 등)”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퍼포먼스 기반의 다원 예술을 선보여왔다.1 2023년 11월 18일부터 19일까지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에서 공개한 두 작품에도 그러한 작품 경향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1. [역행의 여행사 II: 불빛과 저 마을을 향해]
김지선 작가가 2021년과 2022년 옵/신 페스티벌을 통해 공개한 [역행의 여행사]와 마찬가지로, [역행의 여행사 II]는 마치 패키지여행처럼 여러 웹사이트(웹–장소, web-site)를 이동하며 관광하는 가이드 투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1년 공개된 여행사의 첫 프로그램 ‘침잠/보기’가 “기반이 되는 모든 관념들이 무너지고 연결되는” 고정되지 않은 흔들리는 땅으로의 여행이었다면2, 올해의 ‘불빛과 저 마을을 향해’는 역동적인 온라인 커뮤니티로의 여행이다. 여행객은 놀이기구 혹은 열차를 탄 것처럼 화면 앞에 계단식으로 앉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국내외의 주요 커뮤니티(다음 카페, DC 인사이드, 4chan, X, 레딧, 일간베스트 저장소, 유튜브, 틱톡, 디스코드 등)를 방문한다. 김지선은 각 커뮤니티에 대한 가치판단은 최대한 자제하고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어조를 유지하며 각 장소의 풍경과 문화를 가감없이 살펴본다. 후술하는 것처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현재는 찰나에 지나가기 때문에, 가이드 투어에서는 해당 사이트를 현장에서 직접 방문하거나 1-2일 전의 스크린샷을 사용함으로 최대한 현재의 모습을 충실하 반영하고자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음악∙사운드를 생성하거나 아카이브 해 놓은 웹사이트3 또는 유튜브의 sake L과 같은 음악 밈(meme)에서 배경 음악으로 사용될 만한 소리들을 직접 조작하여 형성하는 등 ‘실시간’의 요소를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생생함을 더했다.
해당 투어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여행이 단순히 방문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 커뮤니티별 역사와 구성(게시판 – 스레드, 텍스트 중심 – 이미지 중심, 검색 가능 여부 등) 혹은 특성(언어, 행동 양식, 성향, 주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 어떻게 생성되고 발전하였으며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매우 상세하게 살펴본다는 점이다. 예컨대 DC 인사이드가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의 중심지이자 원류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언어를 만들어 확산시키고, 합성 이미지를 통해 흥미와 유머가 중요시되는 분위기를 형성시켰기 때문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또한, 게시된 순서대로 보여주는 타임라인 형식의 X가 짧은 텍스트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 스레드 방식의 레딧은 댓글이 달리면 오랜 시간 전에 작성된 글도 상단에 노출되어 비교적 오랜 시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지닌다는 점도 함께 살펴보았다. 이렇게 오랜 시간 발전해 온 커뮤니티는 숏폼 형태의 틱톡과 게시글이 눈 앞에서 빠르게 흘러가는 디스코드까지 다다르게 되었으며, 온라인에서의 언어와 행위는 이제 짧고 자극적인 형태로 빠르게 흘러가며 쌓이고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특성과 구성원을 지닌 인터넷 커뮤니티를 이어주고, 분리해주는 것은 ‘익명성’과 ‘자유’라고 할 수 있다. 4chan이나 일간베스트와 같은 커뮤니티에서는 익명성을 기반으로 한 사회 및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유튜브 등에서는 이러한 자유성을 바탕으로 현실 및 온라인 세계에서의 말과 행동에 대한 윤리적 처벌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투어의 가이드는 이 두 형태가 결국 폭력에 대한 동경에서 만난다고 지적한다. 사이버자유주의자(Cyberlibertarian) 중 한 명인 발로(John P. Barlow)는 사이버 공간(cyber space) ‘누구나, 어디서나, 자신이 믿는 바를 두려움 없이 다른 인류에게 표현할 수 있는 글로벌하고 반 주권적인 새로운 사회적 공간에 대한 약속‘을 예고한다고 주장한다.4 약 30여년 전의 학자가 예견한 것처럼 인터넷은 물리적 세계 내 사회의 여러 정치적, 규율적 통제를 벗어던지고 자신이 믿는 바를 자유로이 표현하는 공론장이 되었다. 마치 현대에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의 시청 목록조차 나의 정체성과 생각을 규명하는 개인 정보가 된 것처럼, 자유를 추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의 말과 행동은 이용자와 구성원들이 믿는 진실이자 정체성을 형성하고,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며, 이렇게 형성된 문화와 사상이 다른 이들의 말과 행동을 규제하는 폭력의 근원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여행객은 이 모든 광경을 스크린으로 감상하기에 한 걸음 떨어져서 외부인의 시각으로 관람한다. 그러다 보니 마치 텔레비전 시청자처럼, 혹은 ‘지구 마을’ 놀이기구의 탑승객처럼 이곳의 ‘나’와는 관련이 없는 현상들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입장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투어를 통해 하나하나 살펴 보다 보면 이것이 점점 나의 일상과 관련한 이야기임을 직감하게 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투어에서 언급된 커뮤니티나 그곳에서 확산된 언어 및 이미지를 하루에 한 번 이상 마주하게 된다. 나의 알고리즘을 채운 콘텐츠들, 방문했던 여러 사이트의 게시판과 스레드, 빠르게 채워지고 있는 내 소셜미디어 계정 내 타임라인 등, 결국 이는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한 투어이기도 하다. 이를 깨닫는 순간 투어는 순식간에 메타적 시선으로 변모하며,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자유와 이를 위시한 폭력에 내가 얼마나 연루되어 있을지 다시 한번 곱씹게 된다.
2. [우리의 사원]
[역행의 여행사 II]가 진지한 내용 속에서도 비교적 유쾌한 분위기로 흘러갔다면, [우리의 사원]은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 공연은 마치 폐허가 된 듯한 박물관을 연상시키는 분위기 속에서, 스크린 내의 이미지와 함께 녹음된 내레이션, 세 명의 배우가 곳곳에 배치된 오브제를 살펴보고 탐구하는 듯한 퍼포먼스, 그리고 바이올린의 실황 연주를 함께 감상하는 일종의 다원 예술 형태로 구성되어 있었다.
김지선 작가의 전작 [슬픔의 집]이 게임이라는 형식을 통해 디지털 시대의 기억과 생각에 대해 탐구했다면, [우리의 사원]은 그 영역을 디지털화된 것들의 전반으로 확장하여 데이터의 생성과 보존, 기록, 그리고 소멸에 집중한다. 디지털 혁명 이후 이미지와 문서, 웹사이트, 심지어는 인간의 기억까지 대다수의 정보가 데이터 형태로 인터넷에 저장된다. 디지털 저장 공간의 한계와 형식 변화, 기술적 호환 문제, 해킹 등과 같은 위험으로 인한 소멸의 위험이 있지만 인간은 물질적인 유적과 유물까지도 지속적으로 디지털화하여 보존하고자 노력한다. 디지털 데이터가 그들의 물리적인 원형보다도 덜 지속적인 형태임에도 말이다.
이 현상을 기반으로, [우리의 사원]은 디지털 시대의 유물을 연구하는 허구의 박사과정 학생을 화자로 삼고 고고학적 접근을 채택하여 어떻게 디지털 시대의 유산을 찾아내고 재현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여기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남아있는 데이터가 아닌 사라진 데이터와 그 흔적이다. 앞서 언급된 디지털 공간의 위험성과 더불어 점차 드러나는 무한한 듯 보였던 저장 공간의 한계 속에서 수많은 데이터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의도적으로 혹은 비의도적으로 사라지고 있다. 어떤 데이터가 살아남고 사라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디지털 공간에서의 새로운 힘과 자본의 논리이다.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끈 정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기업이 배포하는 데이터 등은 이용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복제되지만 이미 지나간 학회나 공연의 홈페이지와 웹 프로그램 북은 비용을 추가로 지불하거나 스크린샷을 찍어 놓지 않으면 흔적만 남기고 알아차릴 새도 없이 사라진다. 또한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 커뮤니티나 세력에 의한 역사적∙사회적 정보 변형과 소거 노력이 존재하며 대표적으로 위키피디아의 문서 훼손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힘과 자본의 논리에 의한 데이터의 누적과 보존은 정보에 대한 통제력을 발생시키고, 사용자의 행동 및 정보의 흐름을 좌지우지할 수 있도록 만든다.
김지선은 이러한 흐름과는 반대로 모든 데이터를 보존하는 것의 가능 여부와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 지니는 덧없는 의미를 반문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영상의 유튜브 링크나 15여 년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눈 챗봇(ChatBot) 웹사이트 등 더 이상 접근이 불가능한 데이터가 가지는 가치와 흔적을 사유하며 디지털 세계가 쌓아 올린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과 정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에 대해 재고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사라진 데이터에 대한 대화, 소환 및 회고가 수행성을 기반으로 한 다원 예술로 구현된다는 점이 바로 [우리의 사원]의 핵심이다. 데이터 유적과 유물을 수집∙전시∙연구하는 박물관에 대한 컴퓨터 이미지가 영사되고, 미니멀한 전자 사운드 위에 반음계적으로 진행되는 바이올린의 라이브 연주가 쌓이며, 마치 유적 사이를 돌아다니듯 배우들이 물리적으로 새겨진 데이터 사이를 오가는 퍼포먼스는 순식간에 파워플랜트에 디지털 시대의 박물관을 소환했다.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작품이 되어 관객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변형과 소멸을 시각, 청각을 비롯한 현실적인 감각적 요소를 통해 생생하게 느껴보고 이를 ‘나’와의 관계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디지털 세계인 온라인 공간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형태의 수행적 예술로 감각한다는 것이 모순적이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세계에서의 젠더와 몸에 대해 연구한 센프트(Teresa M. Senft)가 인터넷이 “여러 컴퓨터와 전화 시스템에서 ‘패킷 전환‘이라고 불리는 수백만 건의 퍼포먼스 효과, 즉 일련의 협력적 퍼포먼스 제스처“라고 설명한 것을 고려해 본다면5, [우리의 사원]이 채택하는 방식이 오히려 온라인 공간의 역학을 표현하고 전달하기에 적절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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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필자가 관객으로서 [역행의 여행사 II]와 [우리의 사원]을 통해 고찰해 볼 수 있었던 것은 국경 없는 온라인 공간에서 형성된 새로운 사회 질서∙구조와 그것이 사용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다. 인터넷 없이 하루 이상을 보내는 것이 어색해진 현대 사회에서, 온라인 공간 내의 사회는 나의 말과 행동, 기억과 존재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을까? 그리고 그 경험의 흔적들은 데이터 세계에 그리고 나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를 가질까? [우리의 사원]에서 내레이터가 언급했던 것처럼, 죽는 순간에 온라인 공간에서의 경험을 생각하고 기억하게 될까? 두 작품을 통해 수많은 질문이 계속 맴돌며 진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