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예술. 이 두 가지 항은 관계없거나, 더 나아가서는 대립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예술을 뜻하는 ‘art’는 원래 예술과 기술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이다. ‘art’의 기원은 라틴어 ‘ars’이며, 이는 고대 그리스어 ‘테크네(techne)’를 번역한 것이다. 이때, 테크네는 일반적인 규칙에 관한 지식에 따라 일정한 기술(skill)에 입각한 인간의 제작 활동 일체를 말한다. 즉, 지금의 기술을 의미하는 ‘technique’와는 다소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art는 회화와 조각, 건축 등을, techne는 의술, 항해술, 기하학 등을 말했다. 이처럼 과학과 예술은 그 본질이 다르지 않다. 피타고라스 음계에 기반을 두고 있는 서양 음계에는 수학적 원리가 반영되어 있으며, 미술에서 말하는 원근법과 황금률 등 다양한 기법 등 또한 과학적 법칙에 따른 것이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 과학과 예술은 연결되어 있으며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예술 또한 그 기술을 사용하여 기존의 사조와 다른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등 현재에 있어서는 더욱 그 관계가 긴밀해졌다. 무엇인가를 구분한다는 것은 일정 수준이나 양을 습득한 어른에 의해 이루어지며, 그 지식을 습득하기 전 상태인 순수한(또는 백지상태인) 아이에게는 각 개체 간의 경계선이 명확하지 않으며, 어른에게 익숙한 것이 그들에게는 호기심을 유발하는 신기한 대상이 된다.
7월 11일부터 18일까지 서울대학교 제1파워플랜트에서 VERSEDAY(버스데이) 기획으로 열린 미디어아트 전시 프로젝트 <The Origin>의 첫 번째 전시인 <ISAAC>展은 바로 이런 지점에 주목했다. 본 프로젝트는 위대한 과학자들이 순수한 아이처럼 던졌던 질문에서 위대한 법칙을 발견한 것을 기반으로 중력, 속도, 시간 등의 보편적인 과학 법칙 속에 내재한 인문 철학적 메시지를 예술적 체험을 통해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하여 천문물리학과와 긴밀한 협업이 이루어졌으며, 보다 감각적으로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오혁이 사운드 연출로 참여했다. 오프닝 당시 프로젝트 자문으로 참여한 서울대 물리 천문학부 황호성 교수, 영상 연출 및 공동 기획을 담당한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 박제성 교수와 프로젝트 총괄 기획 최광훈 실장이 본 전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함으로써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전시를 즐기고 이해할 수 있게 했다. ‘The Origin’ 법칙은 물에 들어가면 숨이 막히고, 물건을 떨어뜨리면 떨어지는 등의 일상생활에서 너무나도 우리에게 익숙하여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점은 우리에게 공장으로서의 공간으로 익숙했던 파워플랜트의 공간 효용성 및 본질성에 물음표를 찍어 이 공간을 다양한 문화 예술적 실험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확장 및 재발견한 점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공간 적합성이 강조되었다.
전시명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바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기반으로 그네와 물 반사를 이용하여 친숙한 오브젝트들의 등가속 운동을 관객들이 느끼게끔 했다. 뒤이어 8월에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을 모티프로 평생 빛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던 어린아이의 모습을 통해 특수상대성 이론을 빛에 의한 오브젝트 왜곡을 통해 보여주고자 연, 요요, 광섬유, 그림자놀이를 이용하여 과천과학관 천체투영관에서 구현해 낸다. 10월에는 모든 정보가 절대 소실되지 않고 홀로그램 판 속에 저장된다고 믿었던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의 홀로그램 우주론을 노래와 비눗방울을 통해 오브젝트의 복제, 확산, 프랙탈 화하여 구현함으로써 그가 꿈꿨던 세계를 국내 최대 규모의 원형 극장형 미디어전시관인 제주노형슈퍼마켙에서 그려낸다. 정리하자면, <ISAAC>은 ‘왜 사과는 떨어질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하여 끌어당김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고, <ALBERT>는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통해 빛에 대한 상상을 유발한다. <STEPHEN>은 확률과 정보에 대한 상상을 자극하는데, 이는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네와 LED 화면 사이에 존재하는 사각의 틀 안에 있는 잔잔한 물은 그네를 타는 관객이나 LED 화면을 비춘다. 물은 인간에게 있어 필수적인 요소임과 동시에 근원적이다. 동시에 자아를 투영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로서의 사유의 대상이 된다.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아를 재인식할 수 있는 인간의 특징은, 관객이 어른이 된 현재의 모습으로 그네를 타고 있지만, 물 위에서 현실과 달리 작게 보이는 형체와 유년 시절을 상징하는 여러 이미지와 합쳐지며 마치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마주하며 고요 속의 내적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향유할 수 있게 한다. 그네는 고정된 한 축이나 점의 주위를 일정한 주기로 진동하는 추의 원리로 중력에 의해 평형점을 중심으로 진자운동을 반복한다. 이처럼 그네에는 정역학의 원리가 적용되는데, 정역학(Statics)은 물체에 작용하는 힘을 중심으로 사물을 관찰하면서 내부적으로 발생하는 힘의 크기와 방향을 가시화하여 분석하는 학문이다. 등가속도 운동의 원리로 작동하는 그네는 각 그네에 앉은 관객이 가진 힘에 따라 그 높이가 달라진다. 그렇기에 설치된 여러 그네는 각기 다른 속도로, 다른 포물선을 그리며 움직이며, 이는 각기 다른 높이로 설치된 그네의 형상으로 인해 더욱 극대화된다. 동시에 그네의 등가속도 운동은 뉴턴의 운동방정식인 F=ma로부터 파생한 것이며, 이는 만유인력의 법칙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뉴턴’이라는 아이를 표현하는 데 있어 그네를 사용한 것은 긴밀한 연결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백남준이 제시한 비디오 아트는 기술의 발전으로 미디어 아트로 발전했으며, 현대 미술, 공연 등 다양한 장르에서 미디어 아트는 적극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디어 아트는 과학과 예술의 결합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로서, 과학과 예술 융합의 의의 및 필요성을 보여준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 아트 컬레티브 팀랩(teamLab) 등이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통해 사람들에게 과학과 예술을 향유하는 새로운 과점을 제시하는 동시에 공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미디어 아트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거나 기존에 익숙했던 형태를 다른 방식으로 변형시키는 방식이 아닌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서 작동한다. 6 x 8m 디스플레이 전체에 몽환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오브제가 일정 속도로 하나씩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순서대로 다시 등장하는 것을 반복한다. 이렇듯 그네 앞에 설치된 대형 LED 속 미디어 아트에는 롤러스케이트, 곰돌이 인형, 큐브 등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이고,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아본 사물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렇게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영상들은 그네가 움직이는 원리인 등가속도 운동과도 상통한다. 미디어 아트를 기획한 박제성 교수는 “순수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등의 질문을 바탕으로 ‘순수한 시각’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미디어아트 앞 여러 대의 노란색 그네는 각기 다른 높이로 설치되어 있다. 개막식이 열렸던 오후 6시라는 시간대로 인해 파워플랜트는 일반적인 극장의 암전 상태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대적으로 어두웠다. 이 상태에서 노란색 그네는 상당히 눈에 띄었다. 왜 노란색으로 했을까? 스쿨버스나 스쿨 존 등 아이와 관련된 색깔은 사회적으로 노란색으로 규정된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함과 동시에 유년 시절로 돌아가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길 의도한 공연의 목적을 색상으로 적절하게 표현했다. 사람들은 그네에 앉아 그네를 타기 시작했고, 이들의 속도와 높이는 모두 제각각이었다. 그네에서 앉는 부분은 보기에는 딱딱해 보였지만, 스펀지로 제작하여 관람자가 편하게 앉아 자신이 그네를 타고 싶은 만큼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탈 수 있게 배려했다.
독특한 음색과 창법을 가진 가수 오혁이 사운드 연출로 참여했다. 이번 전시에 사용된 음악은 몽환적인 사운드를 중심으로 중간중간 일정한 박자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등이 포함되었다. 몽환적인 음악이 계속해서 반복되어 전시장 안팎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특히, 그네가 설치된 공간과 그 바깥 공간의 소리가 다르게 들리게 연출했다. 그네를 타는 순간에는 음악이 더욱 명확하게 들림으로써, 그네를 타면서 그 앞에 설치된 미디어 아트를 응시하는 관객이 더욱 그 이미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를 통해 관객은 항상 머릿속을 유영하고 있던 골치 아프던 문제들은 잠시 잊고, 행복했던 유년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며 마치 놀이터에 놀러 온 것처럼 얼굴에 미소를 활짝 띤 채 전시를 즐길 수 있었다.
2012년 흥행했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세자의 강연을 맡은 스승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익혀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 세자의 핀잔 섞인 질문에 이렇게 답한 장면이 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보면 세상 만물 모두가 문제가 될 수 있고, 세상 만물 모두가 그 답이 될 수 있는 것이옵니다.” 이 장면이 주는 메시지는 본 전시의 목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가정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학교, 직장 등 더 큰 사회로 나아갈수록 우리는 순수함을 잃어버린다. 배운 것을 대개 의심 없이 받아들이며,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에 물음을 제기하는 것은 얼핏 바보같이 보이기도 한다. 특히, 한국 사회는 질문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타인의 눈치를 보는 사조가 강해 일명 ‘질문을 잃어버린 사회’라고 이야기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질문은 정해진 정답을 위한 것 또는 얻기 위한 것으로 치부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에 의문을 품는 것이고,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함이다. 즉, 어떤 질문도 잘못된 질문은 없다는 것이다. 뉴턴이 자신의 머리 위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아무런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자칫 너무나도 뻔한 것을 묻는 질문처럼 보였던 그것은 그의 훌륭한 업적을 만들어 냈으며, 현대까지도 수많은 일상생활과 학문연구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편성에서 특별함을 찾다’라는 전시의 내용처럼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정말 사소한 것을 향한 질문이 때때로는 엄청난 발견을 이끌어 내거나, 혁신적인 시도와 결과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가령 천문학자들은 전체에서 눈으로 볼 수 있는 5%의 물질을 가지고 95%를 추론한다고 한다. 눈으로 봤을 때 은하들은 띄엄띄엄 위치하고 있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했으나, 사실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우주의 거미줄’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발견되었고, 이 또한 누군가 제기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이처럼 이번 전시는 누구나 아이로 돌아가 천진무구하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관람자들은 자유롭게 그네를 타고, 자신의 생각을 일행들과 자유롭게 나누었다. 더불어 준비되어 있던 핑거푸드를 먹고, 음료를 마시며 평상시에 하지 못했던 말들을 밖으로 꺼내 보며, 마치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전시장에 있던 모든 것들을 탐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