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1일 토요일 서울대학교 문화예술원의 실험적 아티스트 소개 프로젝트인 ICA Insight의 첫 번째 행사로서, 파워플랜트에서는 모임 별의 3집 『우리 개(Me & My Dog)』의 발매를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 개최되었다. 친구들 사이의 술 모임으로부터 비롯된 모임 별이기에 관객에게 무제한으로 위스키와 토닉 워터를 제공하여 즐거운 분위기를 자아냈고, 이러한 분위기에 맞게 모임 별의 친구들이 모임 별의 라이브 전후로 DJing을 선보였다. 서현정, 이민휘, 조태상, 황소윤으로 구성된 6월 1일의 모임 별은, 파워플랜트의 한쪽 벽면을 스크린 삼아 프로젝션된 무빙 이미지를 배경 삼아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3집에 수록된 새로운 곡들과 과거의 곡들을 고루고루 들려주었다.
이 조합은 흥미로우면서도 조금 기묘하게 느껴졌는데, 왜냐하면 모호한 두 대상이 함께 엮이면서 매력적인 잠재성을 자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임 별/파워플랜트 각각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보자.
모임 별의 무엇이 모호한지는 굳이 깊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모임 별’ 그 자체가 충분히 모호하기 때문이다. 모임 별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모임 별의 정체를 자연스레 묻게 된다. 모임 별은 밴드인가? 아니면 디자인 스튜디오? 브랜딩 에이전시? 혹은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 우리는 ‘모임 별’이라는 이름이 지칭하는 대상을 쉽게 단언하지 못한다.
물론 모임 별은 스스로를 “2000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밴드로 시작되었으며, 브랜딩, 디자인 및 기획/리서치에 중점을 두고 활동중인 콜렉티브”라고 정의하지만, 이러한 자기-규정조차도 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동일한 페이지에서 자신들을 “(…) 브랜딩, 디자인 및 소프트웨어 개발에 중점을 두고 활동중인 콜렉티브”라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모임 별은 불규칙하고 우연적으로 변모한다.
우리는 ‘대체 누가 모임 별인가?’라는 물음에도 분명한 답을 제시할 수 없다. 2024년 6월 기준, “김경렴, 김수빈, 서현정, 조태상, 안빈, 이선주, 오태경, 장용석, 최원겸, 황소윤”으로 구성된 팀이지만,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모임 별의 구성은 아마 이와 꽤 다를 것이다. 조태상과 함께 모임 별을 꾸렸던 조월은 어느새 모임 별의 구성원에서 빠졌고, 황소윤은 언젠가부터 모임 별의 정식 구성원이 되었다. 심지어 최근 공연들에서는 이민휘가 키보드 세션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제 이민휘는 모임 별이 되는 걸까?
한편, 모임 별의 라이브 전후로 파티를 서포트하는 DJ들은 어떠한가. 이번 공연에서도 늘 그랬듯 모임 별의 파티에 자주 초대되는 익숙한 이름들이 보인다. 허챠밍(DJ QQ aka Heo Charming), 김현아(DJ HyunaKimberly)… 이들은 분명 모임 별의 원류인 술모임을 함께하는 친구들이기에 모임 별의 일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이들은 결국 모임 별 그 자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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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의 전력과 난방을 공급하는 시설에서, 문화예술원에 의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전용(轉用)된지 2년이 되었으나, 여전히 파워플랜트라는 공간의 용도는 미결정적인 것 같다. 파워플랜트는 때로는 블랙박스로, 또 때로는 화이트큐브로 작동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레이브를 위한 댄스플로어나 강의를 위한 교실로도 기능하지만, 여전히 이 공간의 정체성은 모호하기만 한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파워플랜트는 약 40년 간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의 전력과 난방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이었으나, 지금은 전시와 퍼포먼스, 레이브 등을 위한 공간이다. 피상적으로 이러한 전용은 공간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인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무척 자연스러운 문화사적 현상이기도 하다. YBA의 전시 <Breeze>가 런던 도크랜드의 창고를 빌려 개최되었고, 1980-90년대 영국의 레이브가 빈 창고나 폐공장의 스쾃(Squat)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떠올려본다면, 파워플랜트의 전용도 어색한 일은 전혀 아니다.
문제는 이러한 전용의 주체가 누구인가다. 편의상 레이브만으로 한정하여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초기의 레이브는 DJ나 기획자와 같은 파티의 주최자에 의해 계획되었는데, 해당 주체들은 대규모의 공간을 소유하지 못했기에 공간을 무단으로 점유하거나 소유자나 관리자가 불분명하여 방치된 공간을 활용했다. 물론 이러한 레이브가 영미권 하위문화의 주된 형식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 시점부터는, 전용 주체가 자발적 동기를 가진 개인에서 레이브가 사업이 될 수 있음을 직감한 자본으로(혹은 자본가로) 바뀌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전용의 주체는 사적 이익을 따르는 개별 주체였다.
그렇다면 파워플랜트는 어떠한가? 파워플랜트는 “새로운 문화를 이끌어낼 차세대 문화 엔진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그에 따라 문화/예술 교육과 순환 등의 공익을 기치로 내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관하는 것은 문화예술원, 궁극적으로는 서울대학교라는 공적 영역의 집약체이다. 개인의 욕망 혹은 그 욕망으로 포장한 자본에 의해 전유되었던 전통적인 레이브의 공간을, 대학이라는 기관이 공익을 위해 재전유한 파워플랜트라는 키메라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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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플랜트/모임 별은 그 정체성에 있어서도 모호함을 갖는다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다.
파워플랜트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설정한 현재의 정체성에 있어서도 모호함을 마주한다.
파워플랜트는 문화예술공간이라는 전유된 현재의 정체성과 충돌하는 물리적 공간 구조를 내재화하여, 스스로 모호함을 떠안는다. 파워플랜트의 공간 구성은 문화예술공간에 필연적으로 내재할 수밖에 없는 물리적 위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파워플랜트 내에서 공연이나 전시가 주로 이루어지는 주 영역에는 블랙박스를 가능하게 하는 단차(段差)도, 화이트큐브의 전제 조건인 흰 가벽도 없다. 파워플랜트에서 감상자는 부자연스럽게 튀어나와 있는 혹은 돌출되어 있는 무대나 진열대를 응시하는 대신, 임의의 위치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퍼포먼스나 작품을 마주한다.
묵시적으로 형성되는 감상 주체와 감상 대상, 관람자와 예술가, 무대와 객석… 같은 수직적인 구조가 파워플랜트에서는 무의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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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별은 음악가라는 정체성에 있어서도 늘 모호하다.
모임 별이 들려주는 것들은 끊임없이 음악과 음악이 아닌 것 사이에서 진동한다. 이를테면, (과거의 곡들에서도 그러하지만) 새 앨범의 수록곡인 <호수(Lake Song)>나 <부서질듯(IntoPieces)>등에서 조태상의 목소리는 그 지위가 계속해서 변한다. 조태상의 목소리는 때때로 온전한 보컬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불안정한 음정을 띄고, 그렇다고 완전히 비-음악적인 발화라고 기술하기에는 음악적 구조 내에서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마찬가지로, 새 앨범의 수록곡인 <밤은 어디서 울까(Where Do Nights Sob>를 가득 채우고 있는 미술가 양혜규의 목소리는 모든 소리 사이에 낙차가 사실상 없어서 멜로디가 없는 읊조림에 가깝지만, 동시에 뒤를 받쳐주는 피아노와 드럼에 의해 음악적인 보컬로서도 기능한다.
요컨대, 모임 별이 들려주는 것은 비-음악과 음악 사이를,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언어와 음악 혹은 스포큰워드와 포크트로니카 사이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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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모호한 두 대상이 얽히면 각자의 모호함이 배가 되는 것일까? 모임 별/파워플랜트에게서는 심지어 시간의 선형성조차도 모호해진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 모델로 흔히 사유되는 시계열 개념은 혼란에 빠진다.
파워플랜트에서는 과거가 현재에 잔존한다.
파워플랜트는 전력과 난방 공급을 위한 기간시설을 정비하여 문화예술공간으로 전유했다는 점에서, 서울의 낙후된 주택가나 공단지대의 오래된 유휴 공간을 개별 주체가 전유하여 운영하고 있는 서울 곳곳에 산재해
이러한 파워플랜트의 양태와 유사하게, 모임 별은 이미 (음악가로서는 이상하리만치) 시간에 따른 디스코그라피의 선형성을 자주 무시해왔다. 많은 음악가는 자신의 음악적 활동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해가는 정갈한 하나의 카탈로그로 정리하고 싶어하는데, 모임 별은 이러한 선형적 디스코그라피를 줄곧 신경쓰지 않았다.
모임 별에게 있어서 과거의 작업은 곧 동시에 현재의 작업이기도 했다. 예컨대, 이번에 새로이 발매한 3집의 마지막 트랙 <영원이시간을관통하는그순간나를보지말아요>를 보자. 이 곡에서 모임 별의 시간은 비선형적으로 마구 뒤섞인다. <영원이시간을관통하는그순간나를보지말아요>는 조태상이 어렸을 적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파워플랜트의 상황과 모임 별이 애초에 견지해 온 시간적 선형성에 관한 심드렁함은 이내 시계열의 혼란으로 이어진다. 6월 1일 파워플랜트에서의 모임 별에게는 미래도 현재가 된다.
분명 6월 1일 토요일은 모임 별의 새 앨범인 3집 『우리 개』 발매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다. 실제로 모임 별은 공연에서 <우리 개>, <호수>, <부서질듯> 등 새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다수 들려주었다. 허나 여전히 많은 이들은 6월이 다 지난 지금까지도 새 앨범을 온전하게 듣진 못한다. 아직까지 바이닐 구매자를 제외하고는 앨범에 수록된 전곡을 감상할 수 없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6월 1일의 공연은 분명 새 노래들의 발매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지만, 실제로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그 새 노래들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 모임 별은 아직 기념할 수 없는 음악을 기념한다. 관객은 모임 별과 함께 무언가를 기념하지만, 사실 아무 것도 기념하지 못한 것이다.
만든 곡이자, 2006년에 발매했던 『월간뱀파이어 다섯번째호 ‘지혜롭고아름다운사람을포기하는법’』의 수록곡이며, 새로이 발매하는 3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곡이다. 물론 음악가가 기발매했던 자신의 곡을 리마스터링하거나 리메이크하여 다시 내어놓는 경우는 꽤나 흔한 일이지만, 이 곡의 경우 그러한 언급 없이 ‘그냥’ 새로이 내어놓는다.
심지어 6월 1일 공연에서 <영원이시간을관통하는그순간나를보지말아요>는 2006년의 판본도, 3집의 판본도 아닌, 라이브를 위한 새로운 편곡으로 연주된다. 먼 과거였던 <영원이시간을관통하는그순간나를보지말아요>는 이내 가까운 과거가 되었고, 그 가까운 과거는 곧 현재가 되는데, 금새 그 현재는 과거가 되어 버린다.
있는 동시대의 대안공간 및 신생공간 또는 에스팩토리나 코스모40과 같은 복합문화공간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공간들은 매우 동시대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현재의 서울을 표상하는 문화예술공간의 대표적인 형태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여전히 파워플랜트의 곳곳에는 완전히 폐기하지 못해서 방치되어 있는 설비들이 존재한다. 미처 표백되지 못한 과거의 흔적들이 파워플랜트의 현재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극히 현재적인 공간에 과거가 잔존하는 이 상황에서, 시간의 선형성은 모호해진다.
이제 2024년 6월 1일 토요일의 파워플랜트/모임 별이 벌인 사건을 재진술해보자. 모호하게 추동된 욕망에 따라 모호하게 운영되는, 모호한 공간에서 개최된, 모호한 대상의 모호한 소동. 계속해서 중첩되는 모호함 앞에서 선형적 시간관마저도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러한 파워플랜트와 모임 별의 조합은 무엇 하나 명료하지 않은 듯하지만, 그러한 모호함이야말로 모임 별이 그리고 파워플랜트가 가진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모호함은 불확실성과 미결정성을 야기하지만, 동시에 숱한 잠재성과 가능성으로 이어지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