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더 바디즈 Living the Bodies
다양한 몸, 살아가는 몸
Introduction
다양한 몸을 감각하고 인지하지 못하여 발생하는 몰이해는 살아있고 또 살아가는 몸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 혐오, 갈등을 쉽게 키워 나간다. 어떠한 몸들은 다른 몸들보다 더 불편함을 겪고,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갈등 해결을 위한 방법으로써 ‘문제 해결’ 혹은 ‘치유와 극복’의 접근방식은 자칫하면 현재 살아가는 몸들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기 쉽다.
비록 몸의 다양성에 대해 인지하고 이야기하려는 담론의 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몸들이 물리적으로 조우하고 접촉할 수 있는 경험의 공간은 그에 비해 많이 부족해 보인다. 멀리서 바깥에서 타자의 몸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다양한 몸들 속에 나의 몸을 위치시키는 태도와 행동이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담론과 이야기를 넘어 살아가는(living) 몸들이 직접 만나며(encounter) 접촉할 수 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몸의 다양성을 더 잘 감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보여주는’ 행사보다 ‘몸들이 만나고 경험하는 장’으로서 ‘Living the Bodies’를 기획하게 되었다. 파워플랜트에서 이루어질 전시, 공연, 워크숍, 세미나로 구성된 3일 간의 행사는 수동적인 관람의 공간이 아닌, 몸들의 상호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는 장이 될 것이다. 몸으로 살아가는, 몸들이 서로 만나고 감각하는 경험들이 이곳에서 피어나길 기대한다.
공간 디자인: 김수인
운영: 아트인큐베이터
접근성 기획/운영: 조금다른 주식회사
쵤영: 윤관희
사운드 엔지니어: 임성열
Programs
2023.12.1.(금) - 12.3.(일) 12:00-20:00
[전시] 유화수+이지양, 최장원, 김예솔
12.1.(금)
13:00-16:00 [워크숍] 한연지 <몸짓을 글쓰기>
17:00-18:00 [퍼포먼스] 레지스터코리아 <Liquid Bodies>
19:00-20:00 [퍼포먼스] 김수화 <메타 헨즈>
12.2.(토)
13:00-16:00 [워크숍] 한연지 <몸짓을 글쓰기>
17:00-18:30 [워크숍] 이반지하 <부치의 자궁>
19:00-20:00 [퍼포먼스] 김수화 <메타 헨즈>
12.3.(일)
12:00-14:00 [워크숍] 김지양 <사진포비아를 위한 심포지엄 (feat. 몸과 옷)>
15:00-16:00 [대담] 김원영, 최장원, 유들, 김향수 <다양한 몸, 살아가는 몸>
16:30-18:00 [워크숍 연계 쇼케이스] 한연지 <몸짓을 글쓰기>
19:00-20:00 [퍼포먼스] 키라라 <키라라 라이브셋>
Artist
유화수와 이지양은 개인 작업의 연장에서 ‘기술의 발전과 장애’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이어왔다. 2018년 ‘당신의 각도’(온그라운드), 2019년 ‘정상궤도’(팩토리2), 2020년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행화탕), 2021년 ‘예외상태’(보안여관 신관)를 공동기획하고 작가로 참여했으며, 사회 구조와 통념 속에서 작동되는 장애에 대해 그 범위를 넓히거나 좁히면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귀로 듣는 것보다 자신의 시각과 다른 감각으로 소통한다. 감각과 감정, 기억을 세밀히 탐구하며, 듣는다는 게 무엇인지 자기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질문을 가지고 드로잉, 설치, 영상 매체를 아우르며 작업하고 있다. 개인전 ‘중간언어’(탈영역우정국, 2023), ‘덤불숲’(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020), ‘풀실놀이’(룬트갤러리, 2018)를 개최했고, 단체전 ‘건네는 진동’(성북마을극장, 2022), ‘듣다-보다’(JCC아트센터, 2022) 등의 전시와 소리를 주고받는 ‘므브프’(2021~) 프로젝트, 워크숍, 퍼포먼스로 활동하고 있다.
최장원은 작업을 통해 한국의 성소수자+HIV 감염인 당사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세계에 관해 이야기한다. 혈연, 지연, 학연, 가까운 사람,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수자인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냈을 때 생겨나는 여러 이야기를 영상, 입체조형물 등을 사용해 표현하며, 이들을 관객에게 제시할 때 나타나는 다양한 반응에 주목한다.
김예솔은 현재 스웨덴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산업디자이너다. 김예솔은 6살 때 장애를 갖게 됐고 그 이후 휠체어 생활은 그의 디자인 작업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가구 브랜드인 릴라엘리펀트(Lilla Elefant)를 2020년 스웨덴인 목공예장인과 함께 설립했다. 그들의 디자인은 사회의 정상성에 도전하고 인클루시브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릴라엘리펀트의 가구는 한국에서 아이앰히어(I am here) 온라인, 오프라인 매장에서 만날 수 있다.
201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WORM의 전자음악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결성된 레지스터(Re#sister)는 전자 및 실험 사운드에 관심 있는 퀴어 혹은 여성들이 함께 모여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고 서로 도우며 배우는 모임이다. 2022년 3월, 레지스터의 한국 지부인 레지스터 코리아가 서울에서 결성되었고, 정기적인 모임인 플러그인(Plug-In)을 통해서 음악과 예술, 창작에 대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김수화는 몸과 기술 매체 사이에서 발생하는 신체성을 탐구하며, 그 사이에 발생하는 균열을 발견하고 드러내어 수행적 사유를 경험할 수 있는 작품 창작을 목표로 작업한다. 글, 영상, 공연 등을 안무 발생의 근거지로 삼고 있다.
한연지는 아시아와 유럽을 횡단하며 경계와 오해, 몰이해의 공간을 확장하려는 (혹은 흩트리려는) 시도로 몸과 안무를 쓰고 있다. 작업의 주축은 즉흥적 안무 구성과 뒤틀리고 촉각적인 관찰. 몸 작업이 가진 여러 겹의 비물질성을 물질화하기 위해 이따금 책이나 편지를 만든다. 2018년 스위스에서 ‘dance collective nonstopillusion’을 창립하고 핵심 멤버로 활동 중이다. 국내외에서 다수의 공연, 레지던시 프로그램, 시각 예술 작업에 무용수, 안무가, 드라마투르기로 참여한 바 있다. 한국에서 발표한 주 작품으로 트랜스레터스 3부작의 우편 공연 ‘몽상가의 편지’(2021), 전시 ‘우물의 꿈’(2022), 공연 ‘편지는 없고’(2023)가 있다.
‘이쁘고 강한 음악’을 모토로 활동 중인 키라라는 2014년부터 활동을 시작해 7장의 EP와 4장의 정규음반, 연 30회 이상의 공연 등의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차갑고 강한 빅비트와 여리고 섬세한 멜로디의 조합을 통해 슬프면서도 신나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키라라의 음악은 세 번째 정규앨범 [Sarah]를 거쳐 최근의 [4]에서 더욱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 프랑스의 트랜스뮤지컬(Trans Musicales 2017), 미국의 SXSW 2019에 초청되는 등, 활동 영역과 인지도를 넓혀가던 그는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음반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신의 주목을 받았다.
이반지하는 가부장제, 퀴어성, 젠더와 매체 경계를 가지고 놀며 작업하는 다학제 예술가이다. 2004년부터 퀴어적 존재이자 현대 미술가로서의 불안정한 삶의 조건을 바탕으로, 한 분야에만 몰두하는 사치를 부리지 않고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을 오가며 예술 활동을 해왔다. 한국 퀴어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 뿌리를 둔 “생존자 유머”를 비롯, 기존의 젠더 이분법적 질서 위에 아무렇지 않게 퀴어적 공간을 열어 내는 작업들을 통해 독자적인 퀴어 미학을 발전시켜왔다. ‘이반지하’는 퀴어의 한국말 ‘이반’과 작가의 위태로운 삶과 작업 공간이었던 ‘반지하’를 결합하여 지은 이름이다.
김지양은 플러스사이즈모델, 플러스사이즈패션컬쳐매거진 66100 편집장, 플러스사이즈여성의류브랜드 66100 대표이자 전 바디액츄얼리 공동MC다. 『엉엉 우는 법을 잊은 나에게』와 『죄책감 없이 먹는 게 소원이야』의 저자다.
성공회대학교 젠더연구소의 연구교수이다. 현재 사회건강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대학에서 여성학과 질적연구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페미니즘 관점으로 아프고 골골한 사람들의 경험과 사유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정상성 규범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골골한 청년들』(2022), 『결국 사람을 위하여』(2019), 『기록되지 않은 노동』(2014), 『엄마의 탄생』(2013)의 공저자로 참여했다.
김원영은 법률가로서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일했다. 2019년경부터는 주로 글을 쓰고 공연을 하는 삶을 산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사이보그가 되다』(공저) 등의 논픽션을 썼고 〈사랑 및 우정에서의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인정투쟁; 예술가 편〉 〈무용수-되기〉 등의 공연에 배우, 무용수로 출연했다.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저술, 교양부문), 2021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 6상을 수상했다.
유들은 트렌스젠더의 인권 향상과 젠더 다양성에 대해 활동하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에서 활동하고 있다. 트랜스젠더로서의 지속가능한 삶을 주요 가치로 삼아 젠더와 다양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페미니즘적 활동을 하며 트랜스젠더 인권을 향상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펼칠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Photos & Sketch
Critic
〈Living the Bodies: 다양한 몸, 살아가는 몸〉 (2023)
2023년 12월 초, 〈Living the Bodies: 다양한 몸, 살아가는 몸〉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해 인문대에서 파워플랜트로 향하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이미 몇 번인가 이 길을 지나다닌 적이 있었지만, 그날 따라 전에는 보지 못했던 비석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 비석에는 제법 근엄한 글씨체로 이렇게 씌어 있었다. 인간은 폭력이다. 현대 가부장제-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중심주의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 있다면, 그리하여 인간으로 셈되지 않는 무수한 비/인간 존재들을 착취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간의 존재 조건이라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 비/인간 존재를 향한 거대한 폭력에 가담하거나 그것을 묵인하는 일종의 공범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기본 조건을 폭력으로 상정하는 것이 그러한 폭력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음을 주장하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불가능성을 예민하게 의식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불가능성에 도전하는 실험을 지속하는 일로 나아 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은 폭력이다’라는 명제가 지닌 윤리-정치적 의의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