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대 The Expedition

이러한 탐험 행위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리적 상상력’(Geographical Imagination)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스티븐 대니얼스(Stephen Daniels)나 데릭 그레고리(Derek Gregory) 등의 학자들을 통해 발전한 역동적이고도 유연한 개념으로 크게는 공간을 인식하고, 상상하고, 이해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³ 쉽게 설명하자면, 공간과 장소와 관련된 가정, 고정관념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이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연결되어 있으며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방법을 제공한다고도 할 수 있다. 즉, 지리적 상상력은 인간으로 하여금 직접적인 환경이나 알려진 세계 너머에 있는 것을 상상하고 미지의 영역에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다리 역할을 한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지리적 상상력으로 탐험의 원동력을 얻게 되며, 더 나아가 탐험을 하면서 지리적 상상력을 확장함으로 스스로와 주변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형성해왔다고 할 수 있다.

2023년 2월 15일부터 2월 22일까지 서울대학교 제 1 파워플랜트에서 진행된 <탐험대 2023, 제 1회 발표회>는 탐험과 지리적 상상력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22년 여름, 기술 발달로 위성 포착된 ‘섬’을 조사하기 위해 특별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탐험대를 파견하여 그곳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탐험대원들은 대체 불가능한 새로운 자원이 노출된 ‘섬’에서 기존에 발견되지 않았던 종교와 문명, 자연과 자원에 대한 정보와 흔적, 유물들을 수집하여 연구를 진행했으며 이번 발표회에서 그 결과물을 공개했다. 안타깝게도 ‘섬’에 대한 대부분의 정보가 극비이며, 민간인의 출입 또한 제한되어 있다. 그만큼 공유할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탐험대는 많은 고민이 엿보이는 구성을 통해 탐구 결과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크게 보았을 때 본 행사는 네 가지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파트에서는 섬에서 발견된 것들 혹은 그것이 손상되었거나 무형이라면 이를 재현하여 배치했다. [현황 보고 세미나]와 [발견악기 세미나]에서는 각각 전시물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탐험 과정과 발견된 악기에 대해 직접 설명해주고, 관람객과 상호 토의를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퍼포먼스]에서는 ‘섬’에서 수행되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예술 행위를 재현하여 선보였다. 이들은 모두 독립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이고, 실제로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가지고 진행되었으나 결국 공통된 정신을 공유한다. 바로 탐험대의 지리적 상상력이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백승렬 대원이 [현황 보고 세미나]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행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추정’과 ‘추측’이다. 아직 이들도 연구 중인 만큼 고정 되어있고 확정된 것을 소개하기보다는, 인지할 수 있는 형태의 발견물들을 매개로 ‘섬’이라는 세계에 대해 상상하고 이해하는 과정 그 자체를 발표회에서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지점은 네 파트 전반에서도 드러나지만, 각 탐험대원이 작성한 연구 보고서에서 두드러진다. 탐험대원들은 전시장에 QR코드를 배치하여 자신의 발견물에 대해 세부 연구 기록과 조사 일지, 그리고 추가 노트까지 작성하여 제공했다. 이 기록물에는 발견 지점과 주변 환경, 그리고 이를 통해 추측해본 섬의 문명과 종교상에 대한 언급이 달려있다. 예컨대, 콜로세븐 대원은 ‘심판족’ 5인 가족의 집터와 그 발견 과정을 살펴보며 해당 지역의 부족들이 주거 이동에 특화되어 있으며, 문화 토론과 조율에 능한 모계 사회임을 추정하고 있다. 또한, 한지수, 강원우, 백승렬 대원은 남부에서 발견된 굴과 그 속에서 발견된 그들의 수행 기록을 탐구해 이 지역의 종교가 자연과 밀접한 연관을 지닌 것으로 추정하고 그 행위를 사운드와 퍼포먼스로 재현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 발표회에서 공간적 배경으로서의 ‘섬’의 장소성이 희미했다는 점이다. 물론, 발견 장소가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로 분류되어 제시되어 있으며 산맥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의 정보는 제시된다. 또한 ‘섬’에 대한 정보가 극비인 상태인지라 탐험대 또한 가능한 형태의 간단한 지도와 게임의 형식으로나마 섬을 구경해볼 수 있는 장치들은 마련했다. 하지만 전시와 프로그램이 지역적 특색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기 보다는 삶의 방식이 드러나는 조형적 특성이나 추정되는 사용 목적에 초점을 두어 구성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발견물과 프로그램만으로는 ‘섬’의 구체적인 형상이라거나 지리학적∙지질학적 특성 혹은 그곳의 종교와 문명이 만들어낸 장소감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다. 전반적인 프로그램 구성이 발견물을 연구함으로 추정해볼 수 있는 생활상과 종교에 조금 더 방점이 찍혀져 있기 때문에 ‘섬’의 장소성이 아니라 그 위에 구성된 서사가 더 중요하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섬’ 그 자체가 아닌 그곳에서의 ‘이야기’에 초점을 두는 전략은 양날의 검으로 다가왔다. 발견물들의 다양성과 서사는 매우 흥미롭지만 이들을 묶어주는 단어가 ‘섬’이라는 단어 외에는 없다보니 전반적인 응집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한편으로는 관람객의 상상력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이번 발표회는 박물관적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즉, 관람객이 주관적으로 동선을 택하고 발견물들을 가까이에서 감각함으로 섬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 권장되는 형태인 셈이다. 재현 방식에 있어서도 시공간을 흐트러뜨리거나 혼합해놓는 방식을 택했다. 동굴 속 음향을 구현하는데에 생황이나 피리 등의 국악기를 사용한다거나, 김재인 대원 혹은 안태은 대원처럼 선형적 시간으로는 담기 어려운 흔적을 재현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결국 탐험대는 의도적으로 ‘섬’에 대한 묘사를 배제함으로 관람객이 오직 흔적과 그 서사를 통해 그 너머의 장소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 지점이 바로 본 발표회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였다. 필자 또한 처음 발표회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일관되지 않은 수많은 정보가 발견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만 같아 큰 당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발표회에 머물고, 탐험대원들과 시간을 보내며 천천히 퍼즐을 맞추면서 나만의 섬을 그려내는 재미를 찾아볼 수 있었다. 다음은 필자가 구상해본 ‘섬’에 대한 간략한 탐구 보고서이다.

‘섬’은 사면이 바다이고, 서쪽과 동쪽에 산맥이 자리 잡은 곳이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대체로 선형적이지 않고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것으로 보인다. ‘섬’의 남부에는 굴이 있으며 종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남부의 대부분 발견물이 종교 및 그 수행과 연결되어 있다. 중부의 경우에는 산등성이, 평야, 성곽이 있다. 이곳은 유독 집터와 같은‘머무름의 흔적’이 많이 등장한다. 동부는 해안가와 산맥의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해안가에서는 바람을 활용한 발견물이 많이 등장하며, 산맥에서는 금속 활자나 금속 광물과 같은 독특한 자원이 발견되었다. 서부의 경우에도 산맥과 해안, 개활지 전반에서 기계 문명, 무기, 선박 등의 흔적이 보이며 외부 문화와의 연결점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섬’과 외부를 이어주는 지역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북부는 사람의 흔적이 비교적 적으며 버려지거나 남겨진 발견물이 많이 등장한다. 껍질이나 가면 형태가 발견되며 이들 중에는 과거의 것도 현재의 것도 아닌 미지의 물체도 있다. 아직 다섯 구역의 공통지점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서부와 동부에서 보이는 공통지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보고서를 작성하며, 아마 발표회를 방문한 모든 관람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섬을 이해하고자 노력했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직접 몸을 움직여 발표회 공간을 누비면서 각 발견물의 연결점을 확인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또 하나의 탐험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특히나 발표회의 전반적인 구조가 그저 바라만 보는 형태가 아니라 구성된 환경에 몰입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기에 관람객을 또다른 ‘탐험대원’으로서 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이는 몰입적인 형태의 연극(Immersive Theatre)을 연상시키는 부분이기도 하다. 퍼포먼스 학자 아놀드 아론슨(Arnold Aronson)은 몰입적인 공연에 대해 “모든 감각을 동원하는 완전히 포괄적인 몰입 환경에서 진행되는 관객 참여적 퍼포먼스 이벤트”로 정의하며 그 본질적인 특성으로 총체적인 환경과 다양한 수준의 관객 참여를 언급한 바 있다.⁴ 탐험대의 발표회 또한 파워플랜트라는, 서울대의 역사성을 담지한 공간적 특성을 적극 활용하여 총체적인 환경을 구성하였고, 관람객이 자신의 감각을 동원하여 다른 탐험대원 및 발견물과 상호작용하도록 이끈다. 예를 들면, 공간 내 수많은 스피커와 헤드폰은 독특한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를 구성하고, 20개의 스피커를 굴의 형태로 배치하여 남부의 굴을 소리를 매개로 감각할 수도 있게 하거나 장은준 대원의 발견물로부터 퍼져 나오는 향의 냄새가 공간과 발견물에 스며들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발견악기 세미나]에서도 관람객들이 강류 대원이 발견한 악기들을 직접 조작해보면서 촉각과 청각을 동원해 발견물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새로운 발견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한 관람객은 세미나에서 관악기를 두드리거나 쓰는 방법을 사용함으로 전혀 다른 용법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몰입적인 환경 안에서 관람객도 하나의 탐험 행위를 진행하게 되며 자신의 지리적 상상력을 확장하여 ‘섬’을 넘어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돌아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발표회는 탐험대와 관람객이 ‘섬’이라는 곳을 탐험하는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하나의 거대한 장이 되었다. 이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방식이 공유되고, 인류의 역사 – 달리 말하자면 인류의 서사 – 를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제시해볼 수 있는 중요한 시도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 날 발표회를 나서며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전시의 구역 구분을 위해 뿌려 놓은 모래에 남겨진 발자국이었다. 그 안에는 1주일의 발표회 기간동안 그 공간을 방문한 모든 탐험가들의 여정이 쌓여 있었으며, 모두가 탐험대원으로서 ‘섬’에 하나의 흔적을 남긴 것만 같아 벅찬 마음이 들었다. 아직은 탐험대가 또 ‘섬’으로 떠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벌써 발견의 짜릿함이 가득하던 이번 탐험이 그리울 따름이다.